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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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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nghe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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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는 잉글랜드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소개한 생물학 이론이다. “자연선택”을 기치로 한 이 이론은 생물이 진화를 통해 생존 능력을 발전시키며 자연에서 살아남은 메커니즘을 설명하여 과학, 종교, 사회 전반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가 다윈주의를 생물학 이론 그 자체로 받아들일수도 있겠지만 진화론은 곧 인간이 진보해온 역사와도 가닿기에,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 사회 이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기도 한다. 진화론이 생물종이 자연의 조건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냐를 다루는 이야기는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어떤 사회구조가 적합하냐는 질문으로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

〈〈종의 기원〉〉의 개정판에서 소개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정치 진영에서 특히 많이 인용되는 개념 중 하나이다. 약육강식의 메타포는 자유경쟁 사회 속 격차가 자연 시스템의 일부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여 이를 두고 정치 진영에서 설전이 이어지기도 한다. 스탈린이 유전학을 자본주의의 불평등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여겨 배척하기도 하였다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적자생존을 두고 설왕설래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원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인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적자생존은 다윈이 직접 주장한 내용이 아니며 〈〈종의 기원〉〉에서 친화력 높은 개체가 연대를 통해 발전해왔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이런 오해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진화론이 받는 오해를 바로잡고, 친화력 높은 동물과 현재의 인류가 생존해온 원리와 이것이 현대 인류 사회에 시사하는 바에 대해 풀어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전학을 넘어 사회 심리학, 역사, 정치 철학, 도시 공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다정함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 글에서는 그중 내가 관심 있는 주제와 관련해 길어낸 몇 가지 고민을 소개하겠다.

비인간화와 현대 미디어의 혐오 표현 확산

나는 평소에 디지털 미디어 매체나 커뮤니티 속 메시지에 관심이 많다 보니 현대의 미디어에서 재생산되는 혐오적 레토릭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일부 미디어의 참여자들은 타 계층 집단에 대해 단순한 분노를 넘어 악마와 같은 대상으로 바라보고 혐오적 발언들을 내뱉는다. 이처럼 극단화된 메시지에서 합리적 사고가 배제된 채 대상에 대한 비인격적 모독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집단 외 타인을 인간 이외의 존재로 인식하고 이것이 인간으로서 동질성을 체감하는 것을 무디게 하는 과정에 대해 짚는다. 비인간화을 통한 동질성의 저하는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신경망을 둔하게 하고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면책하게끔 만든다.

또 저자는 근래에 많이 차용되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근거로 우리가 사회 계층 바깥의 타자를 인간과 가까운 종인 유인원에 비유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불쾌감을 증폭시켜 혐오적 배타 심리를 강화하는 데에 일조한다고 말한다. 이는 디지털 매체 혐오 표현 속 라벨링이 유효한 이유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친화력 동물이 계층 외 타자를 적대시하는 원리에 대한 책의 설명이 디지털 매체에서 혐오 표현이 재생산되며 그 위험도가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증오에 대해 명쾌한 예측을 제시한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외집단을 비인간화할 때, 즉 외집단 구성원을 인간 이하의 무언가로 말하는 것이 이를 듣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폭력 행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또한 사람을 동물이나 기계에 비유하거나, ‘쓰레기’ ‘기생충’ ‘체액’ ‘오물’ 등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형태의 증오언설이라고 본다.

우리는 타자 혐오를 종식할 수 있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는 친화적 생명체의 악한 면이 집단 바깥의 타자를 배척하는 현상에 대해 생물학적 관점에서 유려하게 풀어내며 이를 극복할 해법으로 “우호적 접촉”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책에서 인간이 낯선 상대라도 서로 눈을 맞추고 마음을 읽으며 두려움을 친밀감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에 관해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타자라도 우호적 접촉을 강화함으로써 서로를 경험하고 이해하며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허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대의 미디어 지형이 이러한 우호적 접촉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막막하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우리는 더없이 쉽고 빠르게 메시지를 교환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 접촉은 배제되어 있어 상대방에게 인격적 유대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미디어 시스템 속 추천 알고리즘이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고립시키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 심화할수록 디지털 미디어의 참가자는 나와 다른 타자를 경험할 기회를 차단당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속 담론의 형성이 인간적 유대 형성을 기반으로 건전한 상호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것만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가 미디어 속 혐오를 잠재울 실마리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느껴져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마치며

처음에 책을 고를 때에는 적자생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는다는 것에 끌렸다. 그런데 이 책은 예상 밖에도 생물학의 관점에서 적자생존의 의미를 바로 세움을 넘어 진화의 역사에서 친밀함과 연대가 가진 의미를 설명하고, 현대 사회 문제의 진단과 이를 해결할 지침까지 전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를 걸쳐 서술하다 보니 책을 읽다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책이 경계를 넘나들며 던지는 질문들을 곱씹으며 새로운 생각들로 머리를 가득 채울 수 있어 즐거운 책 읽기였다.